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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5/18 살아있는 전설, 마스터 슬라이더 염종석 by 노헝그리 (2)
[너무나도 풋풋한 92년 데뷔 시절의 염종석]

1992년은 정말 나에게 잊을 수 없는 뜻깊은 한 해였다.
야구에 푹 빠진.. 롯데의 광적인 팬이 된 지금의 내가 시작된 해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 못지 않게 야구광이셨던 아버지는 92년 친구와 나를 거의 매일 야구장에
데려가셨다. 한 술 더뜬 우리는 1회초부터 보기 위해 아예 경기장에 먼저 가서 아버지
를 기다리는 센스를 발휘했다. (그 이후, 아버지가 바쁘시면 그냥 우리끼리 야구장을 갔다-_-)

그 해, 나의 우상이 되었던 2명의 선수가 있었으니, 바로 염종석과 박정태였다.
92년 2월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염종석이 92년 프로야구를 압도하리라 예상한 전문가는 아무도 없었다.

92년은 야구계에 있어 매우 인상적인 해였는데..
임선동, 조성민, 손경수란 걸출한 슈퍼 스타급 투수들이 고교를 졸업한 해였다. 당시 이 세 명의 빅3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메이저리그를 주름 잡은 박찬호도 바로 92학번이다.

암튼.. 그렇게 무명이었던 염종석은 정말 센세이셔널한 성적을 보여줬는데, 당시 선발, 중간계투, 마무리의 분업이란 개념이 모호하던 시절.. 17승 9패 6세이브 2.33으로 방어율 1위, 166탈삼진으로 6위를 기록하며 역사상 최고의 고졸 신인으로 역사에 남을 성적을 기록했다.

지난 시즌, 류현진이 고졸 신인으로서 이런 염종석의 아성에 도전했는데, 류현진의 정규 시즌 성적은 염종석의 그것에 충분히 비견할만했다. 아니,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인 선수에겐 정말 살벌하게 심장 떨릴만한 포스트 시즌에서 류현진은 역시 아직은 어린 신인이란 모습을 연출했다. (물론, 나름 준수했지만..) 이에 반해, 염종석은 그해 92년 포스트 시즌에서 2번의 완봉승을 포함한 4승을 올리며, 신인이라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특히, 92년 삼성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 보여준 2안타 완봉승.. 그 2안타도 병살타로 마무리해 9이닝 동안 단 27타자만으로 삼성을 제압하며, 퍼펙트 게임에 버금가는 압도적인 면을 발휘했다.

최고 148km에 이르는 묵직한 직구에, 슬라이더만큼은 내가 최고라 자부한 선동렬 마저 인정한 130km 중반까지 나오는 고속 슬라이더는 당시 최고의 스터프였던걸로 기억한다. (참고로 92년 염종석이 방어율 1위를 기록하며, 선동렬이 데뷔한 이래 93년까지 활약하며, 풀시즌을 기준으로 유일하게 방어율 타이틀을 차지 못한 해로 기억된다.)
[완치시키지 못했던 고교 시절의 부상과 92년의 혹사로 인한 수차례의 수술 흔적.. 당장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92년에 너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버린 탓일까?
동기였던 정민철과 더불어 향후 한국 프로야구를 책임지리라 여겨졌던 염종석은 92년의 혹사로 너무 일찍 저물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차례의 수술과 끊임없는 재활로 다시 마운드로 돌아왔다.

비록, 92년에 보여줬던 압도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지만..
여전히 롯데 팬들에게는 최고의 투수로 기억되는 염종석.. 올시즌 그의 부활이 마냥 반갑기만 하다-ㅁ-

[보너스 - 92년 압도적이었던 염종석의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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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헝그리

2007/05/18 12:56 2007/05/18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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